해미순교성지(海美殉敎聖地)
해미순교탑(무명순교자의 묘) 순교성지내 노천성당 예수님 십자가 상 생매장 순교지(여숫골)와 진둠벙 자리개 돌(순교자들이 비참하게 처형당한 돌) 순교자 유해를 모셔놓은 해미순교성지 기념관 해미순교자 성지 기념관 입구 순교자 박해 조각품 순교자 유해를 모셔놓은 내부( 해미순교 성지 기념관) 김윤찬이 해미순교성지(海美殉敎聖地) 를 다녀와서. 수천명의 이름모를 신앙선조들의 순교성지. 충남 서산시 해미면 읍내리 275-10 해미순교성지(여숫골) 기념지를 찾았다. 속칭 "해뫼"라 일컬어지는 해미 고을은 역사적으로 조선 초기에 병마절도사의 치소를 둔 곳이다. 해미성지는 천주교 박해 1790년대부터 1880년대에 이르는 100년간, 천주교 신자들을 국사범으로 대량 처형한 곳이다. 신자들이 참혹하게 죽은 순교성지이다.
해미순교성지의 역사적 배경 1801년의 신유박해 이전 해미에서는 인언민(마르티노)과 이보현(프란치스코)이 순교하였고, 1811~1839년의 기해박해 이전에는 김진후(비오)가 1814년에 옥사한 것을 비롯하여 모두 8명이 순교하였다. 1866년 이후의 병인박해기에는 122명에 이르는 순교자가 이곳에서 탄생하였다. 해미의 유명 순교자는 모두 132명에 이르는데, 여기에 무명 순교자 47명 이상의 수를 더하면, 기록으로 확인되는 박해기의 순교자 총수는 179명 이상이 된다. 해미 순교자들의 순교 형식은 교회 순교록을 통해서만 67명이 확인되는데, 그 중에서 교수형이 33명으로 가장 많았으며, 참수와 옥사가 각각 5명, 병사가 4명, 생매장이 3명, 장사가 3명, 미상이 14명으로 나타난다. 특히 해미는 한국에서 유일하게 생매장 순교 터와 그 순교자의 유해가 확인 발굴되고 보존되어 왔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지니고 있다. 해미 성지는 다른 어떤 순교지보다도 당시 참혹했던 핍박의 흔적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는 곳이다. 1백 년의 박해 기간 동안 단 한 차례도 그 서슬이 무뎌지지 않았던 해미는 수천 명의 이름 모를 순교자들이 웅덩이와 구덩이로 내몰린 채 생매장당한 곳이다.
이렇게 스러져 간 순교자들은 그 수가 정확히 얼마나 되는지, 누가 어떻게 죽었는지 알 길이 없다. 다만 수천 명으로 추정되는 순교자들 중 132명의 이름과 출신지를 남기고 있으나 그나마도 불확실하고 나머지는 이름도 남기지 못한 무명 순교자들이다. 이들이 숨져 간 유적지는 현재 깨끗하게 단장돼 있다. "예수 마리아"를 부르는 교우들의 기도 소리를 '여수머리'라 알아듣던 주민들의 입을 통해 '여숫골'이라는 이름으로 전해 오는 생매장 터인 진둠벙등 노천 성당으로 단장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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