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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께 편지쓰기” 공모 대상작 김경연(33, 성남시 거주)

김윤찬 2025. 7. 1. 13:52

아버지께 편지쓰기공모 대상작 김경연(33, 성남시 거주)

아버지! 죄송합니다.

지난 20207, 서울출판문화회관에서 열린 아버지께 편지쓰기수기(手記)공모 시상식에서 김경연 씨(33, 성남시)<아버지! 죄송합니다>가 대상을 수상하였다고 합니다. 아버지에게 자신의 죄를 고백한 그녀의 눈물 수기를 읽은 사람들은 아버지의 깊은 사랑 때문에 모두 말을 잃었다고 합니다.

 

김경연 씨는 자신의 아버지에게 진솔한 마음을 담아 편지를 썼습니다. 그녀는 아버지와의 관계에서 느꼈던 여러 감정들을 솔직하게 표현하였고, 그 과정에서 아버지에 대한 사랑과 미안함이 교차했습니다. 특히, 아버지가 힘든 시기를 겪으셨던 기억을 떠올리며, 그때의 자신이 얼마나 무심했는지를 반성하는 내용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아버지와의 관계는 단순한 가족의 연을 넘어, 서로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요소입니다. 김경연 씨는 아버지의 사랑을 느끼지 못했던 시절도 있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 사랑의 깊이를 깨닫게 되었다고 합니다. 아버지의 희생과 헌신을 이해하게 되면서, 그녀는 더욱더 아버지에게 감사한 마음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심사를 맡았던 소설가 김주영 씨는 딸의 수기는 골방 한 구석 편에 누워있던 아버지를 일으켜 세워 그 위대한 부성애(父性愛)에 정당한 이름표를 달아준 것이라며, “우리들의 모든 아버지가 이와 같지 않더냐?”라고 반문했습니다.

<아버지! 죄송합니다.>/ -김경연-

불가에서는 현세에서 옷깃을 한 번 스치는 것도 전생에서 천겁의 인연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하였거늘, 그렇다면 부모님과의 인연은 전생에 몇 억겁의 인연이 있어서였을까요? 그런데도 내 가슴에 각인된 불효의 죄스러움이 너무 커 속죄하는 마음으로 이 글을 씁니다.

 

내 땅이라고는 한 뼘도 없는 가난한 소작농의 셋째 딸로 태어난 제가 남편과의 결혼을 며칠 앞두고 식구들이 모인 자리에서, 차마 입에 담지 못할 말로 부모님의 가슴에 처음으로 피멍을 들게 했습니다.

 

엄마, 아빠! 딱 한 번만 부탁드릴게요. 결혼식장에서만큼은 큰아버지 손잡고 들어가게 해 주세요.” 철썩! 채 말이 끝나기도 전에 옆에 앉아있던 오빠한테 뺨까지 얻어맞았지만 저는 단호할 만큼 막무가내였습니다. 그러잖아도 친정의 넉넉하지 못한 형편 때문에 부유한 시댁에 행여나 흉잡힐까 봐 잔뜩 주눅 들어 있었는데 꼽추 등을 하신 아버지의 손을 잡고 많은 손님 앞에 선다는 것은 정말 생각하기조차 싫었습니다.

 

걱정 말그래이. 요즈음 허리가 하루가 다르게 아파오니, . 그날은 식장에도 못 갈 것 같구나. 그러니 마음 아파하지 말고 그렇게 하그라.” 행여나 시집가는 딸이 마음에 상처라도 입을까 봐 거짓말까지 하신 아버지!

 

상앗빛 순결한 웨딩드레스를 입고 결혼식장에 오신 손님들의 축하를 받으며 큰아버지의 손을 잡고 행진하는 순간부터 북받쳐 오르기 시작한 오열로 결혼식 내내 눈물범벅이 되고 말았습니다. 덩그러니 골방에 홀로 남아 쓴 소주잔을 기울이고 계실 아버지를 떠올리며 다시는 아버지를 배반하지 않겠다고 다짐을 했건만, 저는 또다시 용서받지 못할 불효를 저지르고 말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햇볕 따스한 일요일 오후, 화사하게 치장한 채 시어른들을 모시고 바깥 나들이하기 위해 승용차에 몸을 싣고 골목 어귀를 빠져나갈 무렵 제 눈을 의심하고 말았습니다. 얼굴을 잔뜩 숙인 채 꼽추 등에 보자기를 들고서 건너편 슈퍼에서 두리번거리는 한 노인네는 분명 나의 아버지 같았습니다.

 

아버지?.’ 한 번도 와 본 적이 없으신데, 설마하면서 아버지가 아니길 간절히 바랐습니다. 그러나 그날 저녁 무렵, 피곤한 몸을 이끌고 집에 도착한 후 슈퍼로 물건 사러 나갔던 남편이 슈퍼 아줌마가 전해주더라 며 조그만 보따리를 내밀었습니다.

 

야야! 너거 어미가 올라카다가 일 나가서 모도고[못 오고] 내가 대신 가지고 왔대이. 하나는 청국장이고 하나는 거쩔이[겉절이]. 배골찌[배곯지] 말고 마싯게[맛있게] 먹그래이.맞춤법도 틀리게 어렵싸리 쓰셨을 쪽지를 보면서 사돈댁에게 흠 잡힐까 봐 들어오지도 않고 전해만 주고 가실 생각이었음을 짐작하고도 남았습니다.

 

장인어른도 참! 여기까지 오셔서 왜 그냥 가셨지?” 남편도 미안해하는 눈치였습니다. 버스를 세 번이나 갈아타야만 올 수 있는 길을, 언젠가 한 번 들린 적이 있는 큰 언니한테 묻고 또 물어서 찾아오셨던 아버지! 딸네 집이 눈앞이면서도 물 한 모금 얻어 마시지 못하고 쓸쓸히 발길을 돌렸을 아버지를 생각하면 지금도 눈가에 이슬이 맺힙니다.

 

시집가서 자식을 낳아봐야 부모 마음 반이나 깨 닫는다고 했던가요. 늦게나마 철이든 저는 이제야 그 의미를 알 것 같습니다. 하지만 한 번 뱉은 말은 주워 담을 수 없듯이 한 번 저지른 불효는 그 어떤 효도로도 깨끗이 치유될 수 없는지 날이 갈수록 한스러워 집니다.